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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역사, 중국 문화, 중국 현실 문제점

중국의 예술문화 탐방

중국의 예술문화 탐방

중국의 예술문화 탐방
중국의 예술문화 탐방

드넓은 대륙 중국에는 지금도 살아 숨 쉬는 듯한 과거와 세련되고, 도회적이며 미래 지향적인 현대가 공존하는 예술문화를 볼 수 있지요. 이번 시간은 중국 예술문화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나라에는 어둠 속에서 어머니는 떡을 썰고, 아들은 글을 썼다는 이야기로 유명한 한석봉이 있지요. 중국에는 해서, 행서, 초서 등의 각 서체를 완성하고, 예술로서의 서예 지위를 확립한 왕희지가 있습니다. 저는 지금 저장성 샤오싱 란팅에 와 있습니다. 저장성 소흥시 외곽에 위치한 난정입니다. 난정은 옛날에 춘추시대 월나라 때 구천이 난을 심었다는 전설도 있고요. 그리고 소흥 하면 유명한 문인 중에 서예의 대가인 왕희지의 고향이기도 합니다. 지금 이 난정은 바로 왕희지가 위진남북조 시대 즉, 동진시대 1600~1700년 전에 이곳에 문인들과 함께 왔습니다. 문인들과 글을 지으면서 마지막에 왕희지가 난정서라는 문장을 만들게 됩니다. 불후의 문장이고, 또 하나는 왕희지는 서성이기 때문에 그의 서예 글씨체는 지금까지도 아주 유명한 것으로 남아 있습니다. 왕희지는 두보가 시성, 이백이 시선이라고 할 정도로 시의 세계에 있어서 하나는 낭만주의의 신선, 하나는 성인군자. 마찬가지로 중국 문화 예술 중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서예입니다.

서예

중국에서는 서 법라고 하는데요. 서예가 중 최고봉이 바로 왕희지가 되겠습니다. 여기를 보시면 난정집서, 난정서의 문장입니다. 여기 앞부분만 간단히 설명드리면 永和九年, 영화 9년에 歲在癸丑暮春之初, 그 해 계축년 늦가을 초에 會于會稽山隱之蘭亭, 회계산 자락 난정에서 모였다 많은 문인들이 이곳에 모여 자신의 문장을 자랑하는 것이지요. 여기서 왕희지는 문인들이 느끼는 희열, 그리고 그 당시 지금 기준으로 1600~1700년 전 당시의 분위기를 '만약에 우리가 죽고 나면 알 수가 없지 않으냐' 그래서 뒤에는 '우리가 글로 남기면 후대 사람들이 이것을 보고 당시 우리의 분위기와 느낌을 잘 알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그러한 내용으로 쭉 이어지게 됩니다. 이것이 서로서 나오고 유명한 문장이 되면서 당시 왕희지의 글씨체 자체가 굉장히 유명하게 된 계기가 됩니다. 저는 지금 저장성 사오싱, 저장성 소흥에 와 있습니다. 소흥 하면 유명한 것이 소흥주라고 하는 술과 취두부라고 하는 두부요리 그리고 인물로는 여기 보이는 루쉰, 노신이 유명한 노신의 고향입니다. 노신은 근대화 당시 중국의 몽매한 국민들 피해의식, 노예근성, 전통에 눌려있는 중국의 민중들을 구제하기 위해서 일도견혈, 한 칼에 피를 보는 듯한 날카로운 필치로 계몽운동을 벌였던 것입니다. 여기가 바로 노신의 옛 저택, 그리고 마을이 되겠습니다.

루쉰

루쉰는 첫 번째 작품 「광인일기」를 통해 기존의 사회질서를 신랄하게 비판합니다. 그 후, 중국판 양반전 「공을기」를 집필하였으며, 신해혁명 이후 지지부진한 변화에 대한 분노와 좌절을 「아Q정전」을 통해 잘 표현하였지요. 그는 단편소설 「고향」을 통해 '희망이란 본래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것은 마치 땅 위의 길과 같은 것이다. 본래 땅 위에는 길이 없었다.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것이 곧 길이 되는 것이다. '라는 명문장을 남겼지요. 이곳 루쉰의 옛집에서 루쉰의 가계도도 확인할 수 있으며, 그가 쓴 책, 그의 방과 주방 등이 아주 잘 보존되어 있지요. 푸른 물빛을 띤 호수, 길게 늘어진 능수버들이 낭만적인 이곳은 스차하이입니다. 중국에서는 길거리에 모여서 민속악을 하고, 노래를 부르기도 합니다. 저기 보이는 노인 분들이 연주하는 악기가 '이호' 중국어로 '얼후'라는 악기인데요. 두 줄의 우리 해금과 비슷하지만 소리가 좀 높습니다. 우리 해금은 단아한 반면에 여기는 경쾌하고 높은 편입니다. 경극에도 나옵니다. 지금 딱딱 소리치는 왼쪽에 저 부분은 샹성에도 나오고 박자를 맞추는 것입니다. 여기는 이렇게 우연히 모여서 서로 노래도 하고, 생활을 즐기고 있습니다. 유럽식 노천카페, 이국적인 음식점이 보이는 이곳은 상하이를 대표하는 복합예술단지 전자 방입니다.

베이징의 798 예술구

50년대 공장지대였던 이곳은 상하이의 계획에 따라 예술가들에게 저렴하게 임대하면서 예술가들의 작업실이자 완성된 예술품을 판매하는 거리가 되었습니다. 이곳은 임대료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시 외곽의 오래되거나 버려진 공장, 창고를 개조하여 갤러리, 스튜디오, 화랑 등의 예술 공간으로 활용하는 베이징의 798 예술구입니다. 2001년 중국의 화가 황루이는 재생 프로젝트로 '베이징 798 예술구'라는 전시회를 개최하였는데요. 이 전시회가 세계적으로 관심을 받으며, 인기를 얻습니다. 2001년, 최고의 예술 기획전으로 평가받으며 베이징이 현대 예술의 중심지로 떠오르게 되면서 중국 정부는 본래 이곳을 철거하려던 계획을 백지화하고 예술구로 육성을 계획하였지요. 798 예술구는 우리가 지금까지 보지 못한 기묘한 예술품들이 전시되어 묘한 분위기를 연출하고요. 또, 군수공장과 콘크리트 속의 삭막함을 예술가들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재창조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항저우의 서호는 밤이 되면 세상 그 어느 불빛보다 더 아름다운 빛을 보여주는 공연장으로 변신합니다. 호수를 밝히는 둥근달이 공연의 시작을 알리고, 달빛 아래 형형색색의 불빛에 관중은 감탄사를 자아내지요. 서호에서는 '아름답다. '라는 말이 부족한 공연이 펼쳐집니다. 항저우의 무더운 여름밤, 서호에서 펼쳐지는 '인상서호'는 항저우의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어주지요. 책장을 넘기다 보면 마음을 사로잡는 좋은 글귀가 있고요. 그림과 전시품을 보다 보면 '와'하는 감탄사를 자아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