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역사, 중국 문화, 중국 현실 문제점

시안에서 출발하는 실크로드문화

퍼그게임 2022. 7. 27. 19:39

시안에서 출발하는 실크로드 문화

시안에서 출발하는 실크로드 문화
시안에서 출발하는 실크로드 문화

시안에서부터 시작하는 실크로드 문화 기행을 시작해볼까요? 시안은 주 무왕이 도읍으로 정할 때는 호경, 진시황이 도읍으로 정할 때는 함양이라 불렸고요. 명대 이후에는 줄곧 '평안하다.'는 뜻의 장안이라 불렸습니다. 서주, 진, 서한, 서위, 북주, 수, 당 왕조 등 10여 개 왕조가 1,100년을 다스린 수도이기도 했고요. 시안은 북으로 내몽골, 서로 간쑤 성, 동으로 산시성, 남으로 쓰촨 성과 접해있는 교통의 요지이며, 실크로드의 출발지이자 종착지가 되는 국제적인 중심도시였습니다. 실크로드가 개척될 당시인 주 왕조와 한 왕조 시절, 그리고 실크로드를 통한 서역과의 무역과 문화교류가 가장 활발했던 시기인 당 왕조 시절, 실크로드 문화는 진시황의 병마용, 당 왕조의 성곽과 화청궁 등으로 대표되는 중국 역대 왕조의 주류문화와 교류하며 크게 번성하였던 것입니다.

시안의 회족 문화와 불교문화의 공존

11만 점의 문물이 보관된 시안 산시성 박물관에는 당 왕조 시절 서역과의 교류 활성화로 탄생한 화려한 색깔의 당삼채 유물들이 진열되어 있는데요. 당시 당 왕조는 북방계열 혈통이었기 때문에 개방적이고 진취적인 마인드를 가지고 외부와의 교류와 문화 수용에 적극적으로 임했는데요. 이는 당시 시안의 분위기가 자유롭고 활기차면서도 화려하였음을 보여준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현재도 시안 시내의 회족 거리에 가면 당시 페르시아, 즉 이란에서 이주해 정착한 회족들이 흰 모자나 히잡을 두르고 회족 문화를 지키며 생활하는 모습을 볼 수 있고요. 그들의 양고기구이와 양고기를 재료로 만든 양육 포막과 뱡뱡면, 칼국수 괘면 등은 회족 특산 요리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진시황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 보면, 진시황의 지하무덤이었던 병마용갱에서 출토된 병용의 얼굴들에서도 서역인 등 이방인의 모습을 쉽게 관찰할 수 있는데요. 실물과 비슷하게 병용을 표현했다는 사실에 비추어 볼 때 당시 서역 지역과의 교류가 상당히 빈번했음을 알 수 있지요. 시안에는 당 왕조 시절 실크로드 천산 남로를 따라서 인도로 불경을 구하러 간 현장법사와 불교 관련 유적도 남아있는데요. 서역을 거쳐 인도, 즉 천축국의 뇌음사에서 불경을 구하고 시안으로 돌아온 현장법사는 삼국연의 『三国演义』, 수호전 『水浒传』, 금병매 『金瓶梅』와 함께 4대 기서 중 하나인 『서유기』에서 삼장법사로 묘사되고 있지요. 현장은 자은사에 머물며 657부의 범문 불경과 불상을 보존하기 위해 사찰 내에 대안탑)을 세웠는데요. 대안탑은 지금도 보존되어 있으며, 현장의 발 지문도 남아있습니다. 현장은 후에 법상종을 새로 세우기도 합니다. 자은사에는 현장의 제자였던 신라 출신의 원측의 위패도 세워져 있지요. 원측은 경전 번역 사업에 매진했던 인물이고요. 우리가 잘 아는 『서유기』라는 소설 속 손오공이 바로 원측을 묘사한 것이라는 이야기도 전해지고 있습니다.

중국의 실크와 실크로드 역사

자, 지금부터 실크로드 문화와 관련 지어, 중국의 실크와 실크로드 역사에 대해 한번 살펴보도록 할까요? 여러분, 양잠업의 발원지이자 세계 최초로 견직 업을 시작한 나라가 어디일까요? 네, 바로 중국입니다. 1958년 저장성 우싱의 첸산 신석기 유적지에서 발굴된 탄화된 비로드와 비단 조각을 측정한 결과 약 4,750년 전의 것으로 밝혀졌고요. 또한, 은허에서 발굴된 갑골문에 '상'자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3,300년 전 은 왕조 때 이미 뽕나무를 심고 누에 치는 일이 이미 보편화되었음을 말해주지요. 은 왕조 시절, 여러 청동기 표면에도 견직물의 흔적이 남아있습니다. 『시경』에 나오는 양잠, 물레질, 염색 등의 기록은 주대에 견방 직업이 한층 발달했음을 보여줍니다. 『시경ㆍ위풍』의 첫 두 구절에 표기된 “氓之蚩蚩 抱布贸丝 맹지 치치 포포 무사”를 풀이하면 “그 사내 얼굴 가득 웃음 띠고, 천을 안고 견사를 바꾸러 오네.”라는 뜻인데요. 견직물이 이미 중요한 상품으로 자리했음을 보여주는 구절이라 할 수 있지요. 춘추전국시대에는 견방 직업이 매우 발달하여 제나라는 '文采布帛' 문채 포백'으로 세상에 이름을 날렸고요. 초나라의 무덤에서는 마름모무늬의 비단 조각과 '봉)'이 수 놓인 견직물이 발견되기도 하였습니다. 한대에 이르러 견방직은 가장 중요한 수공업으로 자리 잡으면서 규모가 커지고, 품종이 다양해졌는데요. 산둥의 린쯔와 수도 장안은 전국 방직업의 중심지로 이름을 얻었고요. 각각 천명 이상의 공인들이 전문적으로 고품질의 견직물을 생산하여 황실의 수요를 담당하였으며, 동시에 중앙아시아와 로마제국에도 팔려 나갔습니다. 한 무제에 이르러서는 흉노의 침범을 격퇴하고 서한에서 서역으로 통하는 길을 열었는데요. 한 무제는 두 차례에 걸쳐 장건을 서역으로 파견하여 중국과 중앙아시아 및 서아시아의 관계를 강화하면서 실크로드를 개척하였지요. 혹시 실크로드의 진정한 개척자가 누구인 줄 아시나요? 처음 듣는 학습자가 많을 것이라 예상되는데요. 서한 장건입니다. 그럼, 중국 대륙 중 어디를 실크로드라고 할까요? 바로 장안에서 시작하여 하서주랑을 통과하여 둔황을 지난 후 남북 두 갈래로 나뉩니다. 곤륜산 북쪽 기슭을 따라 사차를 지나서 파미르 고원을 넘은 후, 대월 지국과 이란에 이르는 길을 남로라고 부르고요. 천산 남쪽을 따라 구자, 소륵 서쪽으로 파미르 고원을 넘어서 대원과 강거 남부를 지나 서쪽으로 가는 길을 북로라 칭했습니다. 남북으로 나뉜 두 길은 말리에서 만나 카스피해 동남부와 바그다드 남쪽을 지나 서쪽으로 지중해에 이른 후 다시 로마제국 각지로 전달되었는데요. 한대 이후 천여 년 동안 대량의 중국 비단 제품이 이 길을 지나 서역으로 운반되었기 때문에 실크로드라는 명칭이 생긴 것입니다.

실크로드의 경유지 란저우, 그리고 서역으로 가는 관문

시안에서 다시 황하를 따라 서북쪽 황하 중상류지역으로 가면 간쑤 성의 성도인 란저우가 나타납니다. 지형 자체가 산지와 고원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교통은 다소 불편하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은 실크로드의 경유지였고, 황하가 시내를 가로지르고 있는 지형적 조건 때문에 물산이 풍부한 편입니다. 실크로드 길목에 위치한 란저우는 당 왕조 때 황금 시기를 맞이하지요. 안사의 난 이후에는 서서히 서역과의 교류가 뜸해지면서 옛날만큼의 명성은 줄었지만 그래도 꾸준히 서역을 오가는 방문객들로 붐볐습니다. 시내에 위치한 100년 역사를 지닌 간쑤 성 중점대학인 란저우대학은 지역 인재들이 모여 공부하는 곳으로써, 캠퍼스는 활기차고 외국인 유학생이 유난히 많습니다. 옛 실크로드의 전통이 아직도 교육 현장에서 살아 숨 쉬고 있는 듯합니다. 실크로드의 길목답게 란저우의 간쑤 성 박물관에는 종이가 발명되기 이전에 사용했던 죽간 서신, 로마에서 제작되었다는 은 접시, 고대 이란 동전, 그리고 청동기로 제작한 말의 형상인 마도 비 연상 등 당시 실크로드의 교류사를 직접 목격할 수 있는 유물들이 소장되어 있지요. 이란과 로마까지 교역을 이루어냈던 당시 사람들의 흔적을 통해 실크로드가 세계 문화교류의 가교로서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지금 길거리에는 신장위구르 자치구 Xinjiang Uyghur autonomous region)인 옛 서역 지방에서 건너온 건포도 등 견과류들이 넘쳐나고, 우육라면이라고 하는 소고기 탕면 집이 한 집 걸러 하나씩 있을 정도로 많지요. 이러한 모습은 실크로드를 따라 서쪽으로 둔황, 신장 투루판과 우루무치까지 수 천리 이상 이어집니다 시내를 가로지르는 황하 강변 산책로를 따라 앉아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회족들인데요. 둥그런 흰 모자나 검은 모자를 쓴 이들의 선조는 이란 등 페르시아에서 중국으로 이주한 이들이지요. 실제로 란저우 시민 중 30%가 회족이며 이들은 대부분 무슬림 즉, 이슬람교를 믿는 사람들입니다. 길거리 음식을 맛보면 이슬람식 향신료가 강합니다. 또, 삼장법사와 손오공의 서역 여행 모습을 담은 조각상도 볼 수 있는데요. 이 조각상은 실크로드 어디서나 볼 수가 있지요. 란저우는 회족이 많이 살고, 이슬람식 향신료가 강하다고 이야기했는데요. 혹시 이슬람 하면 이거지 하는 것이 있나요? 혹시 이슬람 사원을 떠올린 학습자가 있는지 궁금하군요. 란저우에는 규모가 큰 이슬람 사원이 눈에 많이 띄는데요. 물론 백운관 같은 도교 사원도 있지만, 도시 전체가 이슬람 향기로 가득합니다. 황하 케이블카를 타고 황하를 가로질러 백탑산을 오르며 아래를 내려다보면, 초승달 모양의 이슬람 상징 문양이 걸린 사원들이 여기저기 세워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지요. 길거리에서도 정해진 시간이 되면 두세 명씩 작은 돗자리를 깔아놓고 이슬람식 예배를 드립니다. 한편, 해발 1,700m의 백탑산에 오르면 인도식과 중국식이 혼합된 형태의 백탑이 서 있습니다. 자신을 방문하러 온 티베트 승려를 위로하기 위해서 칭기즈칸이 지었다고 하는데요. 이처럼 실크로드 거점 지역들은 다문화가 조화를 이루며 새로운 형태의 도시문화를 창조해내고 있음을 알 수 있지요. 란저우 서쪽인 둔황으로 가는 길목에는 지위관이 있습니다. 이 관문은 만리장성의 서쪽 제일 끝에 세워진 관문으로서 '天下第一雄 천하제일 웅관'이라는 현판에 걸맞게 둘레가 773m, 높이는 11m인데요. 크다는 생각이 들지요? 고비사막의 하서 주랑 한가운데 서 있고요. 장성의 동쪽 끝 산하이관과는 6,000km나 떨어져 있습니다. 당시 서북방 민족의 침입을 막고 자신들의 영토를 지키기 위해 건설된 장성의 서쪽 끝자락 마지막 관문이니, 여기서부터는 중원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변방 밖으로 이어지게 되는 것이지요. 실크로드 출발지 시안에서 간쑤 성의 란저우와 그 서쪽 변방까지 이야기해 보았는데요. 중국 전통 주류문화와 함께 회족 문화와 불교문화가 어우러진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